
솔직히 처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점심시간을 맡았을 때, 제일 당황스러웠던 게 편식이었습니다. 김치만 봐도 고개를 확 돌리는 아이, 초록색 채소는 절대 입에 안 대는 아이까지. 그런데 이게 단순히 버릇없는 게 아니라 유아기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조금 달리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출생 체중의 3배에 도달한 이후부터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식욕도 함께 줄어든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잘 먹던 브로콜리를 오늘은 바닥에 던지고, 며칠간 딱 한두 가지 음식만 고집하는 건 이 시기 아이들에게 흔한 일입니다.
🔶 가족 식사와 식습관 형성
편식 해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 함께 먹는 환경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아이들끼리 둘러앉아 같은 음식을 먹을 때, 한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옆에 있던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먹더라고요. 이걸 전문 용어로 '모델링(Modeling)'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모델링이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하며 학습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TV나 휴대폰 없이 온 가족이 한 테이블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게 핵심입니다. 아이가 안 먹는다고 따로 다른 메뉴를 준비하면 오히려 편식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준비하되, 그 안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최소 한 가지는 포함시키는 게 좋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https://www.pediatrics.or.kr)).
저도 반 아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할 때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김치를 거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처음엔 덜 매운 백김치부터 제공했습니다. 빨간 김치의 매운맛에 거부감을 보이던 아이들도 하얀 백김치는 호기심을 보이며 한 번쯤 입에 넣어보더라고요. 이런 작은 시도가 쌓이면서 점차 다양한 김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 영양 균형과 반복 노출의 중요성
편식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는 건 절대 금물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보니 적절한 격려와 반복 노출은 필요합니다. 다만 그 방법이 중요합니다. 음식을 먹으라고 압박하거나 안 먹는다고 벌을 주면 아이는 그 음식을 더 싫어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음식 혐오(Food Aversion)'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음식 혐오란 특정 음식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이 형성되어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국내 영양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데 평균 10회 이상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영양학회](https://www.kns.or.kr)). 한 번 거절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제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당근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처음엔 아주 작게 썬 당근을 밥에 섞어줬습니다. 그 다음엔 별 모양으로 찍은 당근을, 그 다음엔 조금 더 큰 크기로 점진적으로 노출했습니다.
다양한 식재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향신료와 허브를 활용하면 단순한 음식도 풍미가 달라집니다. 저희 반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시도했습니다:
▪️ 브로콜리에 치즈 가루를 뿌려 짭짤한 맛 추가
▪️ 당근을 꿀과 함께 구워 자연스러운 단맛 강조
▪️ 시금치나물에 참깨와 참기름으로 고소한 풍미 더하기
➡️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채소를 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 식사 지도와 알레르기 관리
요즘 아이들은 정말 알레르기가 많습니다. 우유, 계란, 견과류, 밀가루까지. 한 반에 알레르기 아동이 서너 명씩은 꼭 있습니다. 왜 이렇게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이 늘어났을까요? 전문가들은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위생 가설이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면역 체계를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해 알레르기 반응이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각 아이의 알레르기 정보를 철저히 관리합니다. 식단표를 작성할 때 알레르기 유발 식품을 명시하고, 해당 아이에게는 대체 식품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는 두유를,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는 쌀가루 빵을 제공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알레르기 관리와 별개로,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려면 긍정적 강화가 필요합니다. 보상으로 다른 음식을 주는 건 역효과지만, 칭찬은 다릅니다. 평소 안 먹던 채소를 한 입이라도 시도했다면 "우와, 오늘 당근 먹어봤구나! 정말 대단한데?" 이런 식으로 즉각적인 칭찬을 해줍니다. 아이들은 이런 긍정적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식사 준비 과정에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장을 볼 때 "오늘 어떤 과일 먹고 싶어?" 하고 물어보거나, 요리할 때 간단한 역할을 맡기는 겁니다. 저희 반에서도 가끔 아이들과 간단한 쿠킹 클래스를 합니다. 샐러드를 만들 때 채소를 씻고, 방울토마토를 그릇에 담고, 드레싱을 뿌리는 정도만 해도 아이들은 자기가 만든 음식이라며 훨씬 적극적으로 먹습니다.
결국 편식은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부모와 교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식습관이 달라집니다. 억지로 먹이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긍정적인 식사 환경을 만들고, 작은 시도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게 핵심입니다. 만약 아이의 성장 곡선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영양소 결핍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길 권합니다. 편식은 발달 과정의 하나이지만, 그 과정을 건강하게 넘기려면 보호자의 인내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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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pediatrics.or.kr/bbs/index.html?code=infantcare&number=8678&mode=view